[후기] 구의 증명
존재와 사랑을 영원히 증명하려는 가장 극단적이고 처절한 이야기
서론
최진영 작가의 소설인 구의 증명을 읽어보았다.
읽게 된 계기는 참 단순했는데, 서점집 아들인 내 친구의 선물로 받게 되었다.
나는 소설이라는 장르에 꽤나 서툴기 때문에 솔직히 얼마나 읽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최진영 작가가 쓴 문장이 주는 몰입도와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감정을 극단적이고 파격적인 방식으로 탐구하는 소설의 내용은 나로 하여금 엄청난 집중력을 선물해주었다.
후기
1. 식인에 담긴 의미
구의 증명의 가장 큰 특징은, 주인공인 ‘담’이 연인인 ‘구’의 죽음 이후에 그의 시신을 먹는다는 충격적인 설정이다.
이는 단순하게 엽기적인 행위를 넘어서, 사랑하는 존재를 영원히 자신과 합일하고자하는 담의 처절한 몸부림으로 해석될 수 있다.
소설에서 ‘담’과 ‘구’의 과거를 교차로 보여주며 그들의 절박하고 순수했던 사랑을 보여준다. 그리고 가난과 사회적 무관심 속에 서로에게 기대고 유일한 빛이 되어주는 둘의 관계는, 담의 식인 행위라는 극단적 선택에 당위성을 부여하려는 작가의 의도로 읽힌다.
이러한 극단적인 설정은, 사랑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다.
사랑은 과연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
담의 행위는 구를 온전히 기억하고 그의 존재를 자신 안에 새기려는 가장 원초적인 방식일 수 있다.
나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에 대한 성경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육체적인 합일을 통한 영적 교감과 영생에 대한 의미를 되새긴 것이었다.
즉, 담에게 구를 먹는 행위는 단순한 식욕이 아닌, 구를 잃지 않으려는, 구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간절한 의식인 것이다.
2. 섬세한 문체속에 담긴 처절한 감정
이처럼 파격적인 소재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나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이는 해당 작가의 섬세하고 시적인 문체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구와 담이 겪는 가난과 고통, 그리고 서로를 향한 애틋한 감정을 건조하면서도 아름다운 문장으로 그려낸다.
특히 담이 구를 먹는 장면에서의 묘사는 식인의 끔찍함보다는, 슬픔과 애절함, 그리고 기묘한 경건함마저 느껴졌다.
책을 읽다보면 작가는 자극적인 소재를 소비하기 위함보다는, 감정의 극한을 탐구하고자하는 진지한 자세라는 점을 느끼게 된다.
또한, 소설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비선형적인 구성을 통해서 구와 담의 사랑이 쌓여가는 과정과 그 사랑이 파국으로 치닫는 현재를 대비시킨다.
이를 통해 담의 행동에 점점 감정적으로 이입하게 되며, 그녀의 선택이 광기가 아닌, 깊은 상실감에서 비롯된 필사적인 사랑의 표현임을 이해하게 된다.
3. 윤리적인 문제와 해석
식인은, 소재만으로도 본능적인 혐오감과 불편함을 유발하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실제로 사람들한테 책의 내용을 소개하면, 소재에 대해 불편해 하더라.
담의 행위를 순수한 사랑의 발현으로만 보기에는, 그것이 가진 폭력성과 파괴적인 측면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식인이라는 소재 자체가 너무 강렬한 탓에 다른 메시지들(가난, 사회적 소외 등)의 의미를 퇴색시킨듯한 아쉬움도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란 무엇인가’, ‘존재를 기억한다는 것은 무엇인가’와 같은 철학적 질문들을 끊임없이 던지면서 다양한 해석과 생각을 하게 해준 작품이라는 점에서, 문학적으로 가치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결론
구의 증명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장 원초적이고 극단적인 식인이라는 방식으로 파헤치며 강렬한 충격과 깊은 여운을 남긴 작품이다.
물론 식인이라는 소재가 주는 불편함과 윤리적 논쟁의 여지는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단순한 자극을 넘어, 사랑과 기억, 존재의 의미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우리 사회의 무관심과 소외 문제까지도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도덕적인 허용과 사회적인 잣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초월하는 사랑은 정말 순수하고 아름다웠다.
천 년 후에도 사람이 존재할까?
누군가 이 글을 읽는다면, 그때가 천 년 후라면 좋겠다.
…(중략) 천 년 후 사람들은 지금과 완전히 다르리라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