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급류
평범한 급류의 이야기
서론
오늘의 젊은 작가 40의 타이틀을 가진 정대건 작가의 장편소설, 『급류』에 대한 후기입니다.
이 책을 손에 잡고 거의 5일 만에 약 300페이지를 완독할 정도로 순식간에 빠져들었습니다.
한동안 유튜브도 보지 않고 오직 이 책의 다음 장을 넘기기는 데에만 몰두했을 정도로, 그 몰입감은 진짜 엄청났습니다.
현대 한국을 배경으로 하기에, 이전에 읽었던 고전이자 외국 소설인 스토너와는 달리, 별도의 해석 과정 없이 이야기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덕분에 친구들이랑 계곡을 놀러 가는 와중에도 손에서 놓지 못했습니다.
후기
충격적인 결론으로 시작하는 급류
이 소설은 평범하게 시작하지 않습니다. 이야기의 첫 페이지는 주인공 도담의 아버지와 해솔의 어머니가 차가운 강물 속에서 시신으로 발견되는 충격적인 장면으로 막을 엽니다.
왜 건실했던 소방관 아버지가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과 나체의 상태로 죽음을 맞이했는가? 이 질문은 독자의 멱살을 잡고 이야기의 끝을 향해 달려가게 만드는 강력한 동력이 됩니다.
저는 이 초반 내용을 보면서 한국 드라마 ‘스카이캐슬’과 애니메이션인 ‘최애의 아이’가 생각났습니다.
“행복한 가정에서 갑자기 찾아온 의문스러운 극단적 선택”, “행복한 일만 남은 사람의 의문적인 피습사건”
충격적인 결말의 일부를 먼저 보여주고 그 과정의 실타래를 풀어가는 서사 방식은 굉장한 흡입력을 지닙니다.
급류 역시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던져줌으로써 ‘어떻게’와 ‘왜’에 대한 궁금증을 참을 수 없게 만듭니다.
이 덕분에 저는 단순한 로맨스가 아닌, 깊은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탐정이 된 기분으로 책을 읽었습니다.
상처입은 두 주인공, 도담과 해솔
이야기의 중심에는 너무나도 다른듯한 두 아이, 도담과 해솔이 있습니다. 밝고 활기차며 소방관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하던 소녀 도담. 그리고 서울에서 전학 온, 하얀 피부에 속을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소년 해솔. 물에 빠진 해솔을 도담이 구해주며 시작된 둘의 인연은 풋풋하고 설레는 감정으로 이어지며 읽는 제 심장까지 두근거리게 했습니다.
하지만 비극적인 사건 이후, 둘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됩니다.
도담은 냉소적이고 자기파괴적인 태도로 자신을 몰아붙이고, 해솔은 이성적이지만, 강박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사지로 몰아붙입니다.
이 불안정한 두 주인공이 서로를 그리워하면서도 만나지 못하고, 만나도 상처를 주고받는 모습은 너무나도 슬프고 안타까웠습니다.
깨진 것이 아닌, 헝클어진 것
두 사람이 행복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사랑은 빠진다고 하는 걸까. 물에 빠지다, 늪에 빠지다, 함정에 빠지다, 절망에 빠지다.
빠진다는 건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랑을 행복이 아닌 또 다른 절망의 시작으로 여기는 그들의 마음속에는 깊은 죄책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죽음이 자신들 때문이라는, 떨쳐낼 수 없는 자기혐오가 그들을 옭아매고 있었던 것이죠.
흔히 ‘나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남을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이 커플은 조금 다릅니다.
각자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지만 역설적으로 상대는 스스로를 용서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게 서로에게 거울이 되어줄 수 있는 두 사람은 긴 시간이 흐른 뒤 우연처럼 다시 만나고, 진실을 마주하고, 서로의 존재가 곧 위로이자 구원임을 깨닫습니다.
“우린 이제 다시는 헤어지면 안 돼”
“자신이 없어. 우린 너무 많은 상처를 주고 받았잖아. 다시 또 그렇게 되면 ….”
“한 번 깨진 관계는 다시 붙일 수 없다고 하는 건 비유일뿐이야.
이렇게 생각해봐 우리는 깨진 게 아니라 조금 복잡하게 헝클어진 거야.
헝클어진 건 다시 풀 수 있어.”
급류
초반에 도담은 해솔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소용돌이에 빠지면 수면에서 나오려 하지 말고, 숨 참고 밑바닥까지 잠수해서 빠져나와야 해”
이 대사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이 됩니다.
인생의 급류 속에서 허우적거릴수록 상황은 더 꼬이고, 오히려 잠시 숨을 고르고 내려가야 빠져나올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했습니다.
두 주인공은 서로를 놓쳤을 때마다 더 깊이 가라앉았고, 마침내 시간이 흐른 뒤에야 차분히 현실을 마주할 힘을 얻게 됩니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제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결론
『급류』는 단순한 성장소설이나 로맨스가 아닙니다.
감당할 수 없는 트라우마를 어린날부터 짊어진 두 영혼이 서로를 통해 구원과 용서를 배우는 과정입니다.
“어떤 불행은 그저 운이 나빠서 일어나는 것”이라는 해솔의 깨달음처럼, 때로는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회복의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인생에서 급류가 찾아왔을 때, 나는 잠수할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D